감정을 경험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좋음과 싫음, 가까이하고 싶음과 피하고 싶음의 방향을 느낀다. 이 판단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온다. 감정 판단이 감정의 원인과 필연성을 묻는 이해로 나아가지 못하고,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 가까이할 감정과 피해야 할 감정으로 고정하는 평가로 굳어질 때, 감정은 자기이해가 시작되는 자리가 아니라 분류하고 처리해야 할 대상이 된다. 이 논문은 그 구조를 스피노자 『에티카』 제4부 정리 26, 27, 59, 61을 중심으로 감정과학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감정과학의 관점에서 감정 평가는 감정 그 자체의 필연성을 배우고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겉모습이나 행동 결과로 감정을 재단하는 감정해석에 가깝다. 따라서 감정 판단이 자기이해로 나아가려면, 감정을 선호하거나 회피할 것으로 고정하는 평가를 먼저 재검토해야 한다. 스피노자는 정리 26에서 유익함의 기준을 인식에 두고, 정리 27에서 선악의 기준을 인식에 도움이 되는 것과 인식을 방해하는 것에 둔다. 감정과학의 관점에서 이 구조를 읽으면, 선악 판단은 감정을 선한 감정과 악한 감정으로 나누는 평가가 아니다. 분노나 슬픔이 그 자체로 악은 아니다. 악은 감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자기이해로 이끌지 못하고 제거의 대상으로만 처리하는 인식의 결핍에 있다. 선악 판단은 감정이 자기이해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인식 기준이다. 정리 59는 수동적 정서에 의해 결정되는 활동도 이성에 의해 결정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정리 61은 이성에서 생기는 욕망은 지나칠 수 없음을 밝힌다. 욕망의 이성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관리하는 기술이 아니다. 감정이 자기 원인과 필연성을 이해했을 때, 그 이해를 따라 더 타당하게 행동하고 욕망하는 힘이다. 감정 판단은 감정이 왜 그렇게 느껴지고 판단되었는지를 묻는 출발점이다. 선호하거나 회피해야 할 것으로 고정하는 순간, 그 물음은 사라진다. 스피노자의 선악 판단은 사라진 그 물음을 다시 세우고, 욕망의 이성은 그 물음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게 한다.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감정을 관리하는 일이 아니다. 감정 안에서 자기 존재의 필연성을 배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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